First Quarter 2025 Business Plan Report
본 자료는 2025년 1분기를 맞이하여 삶의 핵심 가치를 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제시합니다.
서문
“기억이 사라져 가는 이유는 인간의 기억력과 수명에 분명한 한계가 있어서다. 기억을 평생 또렷하게 간직하기도 어렵고, 그러한 기억을 가진 사람이라도 100년을 살기가 쉽지 않다. 기록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머릿속 ‘원본 기억’의 유효기간이 겨우 그 정도라는 뜻이다.
···
영구적이지 못하며, 때로는 부정확하기도 한 인간의 기억을 보완하기 위해 인류는 문자와 종이에 많은 것을 의지해 왔다. 정확하게 쓰이고 주의 깊게 보관된 기록물은 매우 오랫동안 기억의 유한성을 훌륭하게 보조했다. 부주의한 보관 때문이든 천재지변 때문이든 이렇게 기록이 사라지고 나면, 그 기록에 많은 것을 의지해야 하는 한 사회의 역사 또한 잊힐 수 있다.”[1]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기록의 가치를 논했지만, 이는 개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확신을 통해서 삶을 경영하기 위해 정신을 맑게 하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진리’라는 확고한 체계를 중심으로 사고의 깊이와 시야를 확장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지식의 축적을 넘어, 삶의 방향성을 정립하고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삶의 의미
삶의 기록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혹은 순간적인 이끌림에 의해서 시작한다면, 외적 · 내적 요인에 쉽게 흔들려 그 기록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견고한 기반을 마련하고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글을 인터넷에 게시하는 이유에 대해 뜻깊은 의미를 찾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해도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스스로 던지는 질문들, 예를 들어 ‘나는 왜 이렇게 느낄까?’ 혹은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가?’와 같은 물음들은 쉽게 답을 내리거나 정리할 수 없다. 결국, 기록을 남기고 공유하는 것이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일 뿐 아니라 답 그 자체가 될지도 모른다.
존재의 가치를 찾기 전에, 존재는 이미 존재한다. 그렇다고 존재하는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면, 존재의 의미가 있을까? 결과는 원인을 전제로 하며, 원인은 어떤 형태로든 결과를 남긴다. 결국 선택의 기로에서 헤매게 되는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원인이면서 동시에 결과인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과거와 미래를 떠나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현존(現存)’이다.
진정성
1학년 2학기 때 애슐리에서 주방, 설거지 관련 일을 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서 다른 일들을 알아보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과천에 있는 ‘이트너스’라는 회사에 면접을 본 경험이다.1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긴장되었고 압박감이 느껴졌다. 마지막 순간에는 아예 면접을 보러 가지 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과적으로 나중에 불합격 통보를 받고, 다른 일들을 찾아봤지만 나를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웹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것이다. 과연 누군가 읽어줄까 싶지만, 그보다 나 스스로 즐겁게 쓰는 데 집중하려 한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글을 쓴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말 가치 있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을 목표로 한 글은 진정성과 독창성을 잃고, 오래 남지 못한다. 마치 일시적인 유행처럼 스쳐 지나가며, 정보의 홍수 속에 쉽게 휩쓸려 떠내려간다. 결국 그 자리를 채운 것은 흔적일 뿐, 진정한 가치는 남지 않는다.
나는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고, 기억 속에 깊이 자리 잡는 글을 쓰고 싶다. 쉽게 흉내 낼 수 없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근원적 가치를 바탕으로 고유한 정체성을 세워야 한다. 그런 정체성이 뿌리 깊게 자리 잡을 때, 비로소 그 글은 사람들과 진정으로 소통하며, 그 자체로 의미가 있게 된다.
이곳은 개인 일기장이 아니므로 표현에 신중을 기하고자 한다. 아직 부족한 능력 탓에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글이지만, 준비가 다 되기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준비만 하다가 첫걸음조차 내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개인 기록을 전시하는 용도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면 더욱 의미 있고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유익한 정보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면 나의 본분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존재
“인간으로서 우리는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영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 대답은 오직 우리가 있는 그 자리에서 나올 수 있다. 삶은 각 개인의 펼쳐지는 끈 안에서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그 의미는 각자가 삶의 흐름을 타고 나아감에 따라 변화한다. ··· 실제로 삶의 의미는 계속 연속성을 가지고 이어져 왔다. 우리의 경험 안에서 양자도약이 일어났을 때조차도 그것은 여전히 연속성에 근거하는 아인슈타인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2]
양자도약(Quantum Jump)은 전자가 한 에너지 준위에서 다른 에너지 준위로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연속적인 경로를 거치지 않고 비연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연속성에 근거한 아인슈타인의 법칙을 따른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허수 차원을 고려하면 양자도약이 연속적일 가능성이 있는가?
양자역학에서 파동함수는 일반적으로 복소수로 표현된다. 슈뢰딩거 방정식 자체도 복소수를 포함한 미분 방정식이기 때문에, 물리적 상태를 기술할 때 허수 차원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양자도약을 허수 차원의 연속적인 변화로 해석할 수 있다면, 우리가 보기에 불연속적으로 보이는 현상이 실제로는 더 높은 차원(예: 복소수 공간)에서 연속적인 경로를 따라 변하는 것일 가능성도 있다.2
양자역학에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미시 세계의 본질적인 불확실성을 나타내듯이, 삶도 예측 불가능한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했을 때, 스티브 잡스는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인물이다. 암 투병 중이던 그는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에서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곧 죽을 것임을 생각하는 것은, 인생에서 큰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들, 자부심, 좌절과 실패의 두려움, 그런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므로,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을 남기게 됩니다.”
죽음 앞에서 삶은 단순하다. 선택의 기로에서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분명한 나침반이 되어준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기 어렵게 만든다. 현재에 존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겠는가? 존재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평화를 느낄 수 있겠는가?
종교와 과학
“인간의 경험은 공간을 돌아다니는 경험과 끊임없이 나이를 먹는 시간이 흐르는 경험이다. 빛의 경험은 무엇일까? 빛에게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빛은 시간을 통과해 나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빛은 공간 속을 최대속도로 여행한다. ··· 우리가 내면의 빛을 경험할 때,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개념을 존중하게 되며, 그 개념을 이론적으로만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와 비슷한 체험을 실제로 할 수 있다. 빛에게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의미를 알기 시작한다. 빛에게는 늘 영원한 지금인 것이다. 오직 지금만 존재할 뿐이다.” [3]
인간은 자연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학문을 발전시켜 왔으며, 이 점에서 종교와 과학은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며,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종교와 과학을 통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며,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체계에 대해 알고 싶다. 현대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종교와 영성을 통해 보완하고, 세상의 진리를 논리적으로 탐구하는 도구로서 과학적 방법론을 활용하고자 했다.
아는 게 부족한 지금,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몰라 한 곳에 깊이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는 것은 나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순수 과학에 대한 기초를 공부하면, 그것을 중심으로 더 넓은 분야로 확장할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물리학에 따르면 모든 에너지는 보존된다. 우주의 에너지 총합은 절대 변하지 않으며, 현재 살아 있는 육체에 형상화된 에너지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삶과 죽음의 과정은 바로 현재의 내가 빌려 쓰고 있는 에너지가 언젠가 다른 형태를 취하게 된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하나의 물결에 불과한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 삶과 죽음은 양자 진공에서 일어나는 에너지의 순환 과정 일부로서, 잠깐 한 가지 형태를 취했다가 다시 진공 속으로 해체되어 들어간다. 죽음은 생명이 되는 에너지의 영원한 변형으로서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4]
탐구를 하며 신기했던 점은 불교와 양자물리학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두 분야가 서로 다른 영역으로 여겨지지만, 그들 사이에서 유사한 개념이나 통찰을 발견한 연구들이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 과정에서 철학은 두 분야를 이어주는 가교가 되고, 논리는 그 다리를 통해 진리에 도달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공부
물리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결핍되어 있고 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내가 ‘모든 것의 이론’에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은 굉장히 교만한 생각이 아닐까?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백지상태에서 직관으로 방향성을 찾아내는 것은 이론을 빠삭하게 꿰뚫고 있는 물리학자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고 톡톡 튀는 신선함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물리학 공부가 간절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인상적인 부분들을 찾아보고, 공부한 것들을 최대한 기록해보려고 한다. 그런 순간은 쉽게 찾아오지 않아서 소중할뿐더러 내용을 한 번 더 정리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1916년에 로렌츠에게 “일반 상대성 이론이 에테르 가정을 수용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라고 했다. 신중하게 생각해 보면, 특수 상대성 이론이 반드시 우리에게 에테르를 부정하도록 강요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에테르의 존재를 가정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에 명백한 운동 상태를 부여하는 것을 포기해야 할 뿐이다.
에테르를 부정하는 것은 결국 공간이 어떠한 물리적 성질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가정하는 것이 된다. 현대 물리학자들은 먼 거리에서의 작용과 같은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관성 효과에 대한 매질의 역할을 해야만 하는 에테르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통일장 이론을 정립하는 것이 물질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에테르의 필요성을 제거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에테르와 물질의 차이는 사라질 것이고,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서 물리학 전체가 완전한 사상체계가 될 것이다.” [5]
마이컬슨 몰리 실험이 에테르의 존재를 부정했다고 받아들여지지만, 이는 양자 세계의 특성에 한정된 결론일 수 있다. 양자적 특성 때문에 에테르 존재 여부를 실험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또한, ‘시간의 절대성과 마이컬슨 몰리 실험은 광속이 무한대일 때에만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은 에테르의 존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고차원에서는 광속이 무한대가 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도 상상할 수 있으며,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부정했던 에테르적 개념 역시 또 다른 차원에서 유효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세계 경제
현재의 주식 시장을 보면 닷컴 버블이 생각난다. 혹시 AI 열풍에 대한 대중의 미망과 광기4일까? 토스뱅크에서는 현재 주가를 이끄는 기업들(Apple, NVIDIA, Microsoft, Alphabet, Amazon, Meta, Tesla)은 여전히 저평가 상태이고, 앞으로 더욱 이익을 낼 전망이라고 한다. 과거의 닷컴 버블과는 달리 IPO 시장이 침체한 상태이기 때문에 시장의 전문가들이 ‘아직 거품 수준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으고 있지만, 경제의 흐름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6]
미국 주식 시장이 거품 상태가 아니라 할지라도, 국가 차원에서 미국이 앞으로 내림세에 직면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이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던 주요 강점으로는 강력한 자본시장과 금융 중심지, 혁신/기술, 높은 교육 수준, 막강한 군사력, 기축통화 지위, 높은 경제 생산량을 들 수 있다. 반면 약점으로는 불리한 경제·재정 상황과 엄청난 국내 갈등이 있다. ··· 미국은 외화 자산보다 외화 부채가 훨씬 많다(국제 투자 대조표상의 순국제 투자는 GDP의 -64퍼센트).” 외국에 투자한 자산보다 외국으로부터 빌리거나 투자받은 자산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금융 부채 수준은 높고(GDP의 277퍼센트), 정부 부채 수준도 높다(GDP의 128퍼센트). 이러한 부채 대부분(99퍼센트)이 자국 통화로 표시되는데, 이는 부채 위험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미국은 경제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하고(단기 금리는 0.1퍼센트), 이미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찍어내고 있다. 즉, 세계 최고의 기축통화국 지위는 미국에 매우 유리한 상황이지만, 만약 이러한 지위가 바뀐다면 미국의 위상이 크게 흔들릴 것이다.” [7]
OATLY
ADR(American Depositary Receipt)은 미국 은행이 외국 증권을 예탁받아 발행하는 증권이다. ADR과 보통주의 비율을 1대 1에서 1대 20으로 변경하는 것은 몇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주가 하락에 대비하려는 조치일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주가 상승 폭을 높이고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일 수 있다.
오틀리는 2025년 2월 12일 오전 8시(EST)에 2024년 4분기 실적 발표를 한다. 현재 1주당 가격이 약 0.5달러인데 ADR 비율 변경 계획을 발표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회사는 재무 건전성을 강화하고, 상장폐지를 방지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초여건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OATLY와 Nespresso가 협업해 캡슐 커피를 출시했다. 주가는 크게 하락했지만, 오틀리가 여전히 건실해 보인다는 점이 마음을 놓이게 했다. 한편, 토스 증권에서 “30 거래일 동안 주가가 1달러를 넘지 않으면 상장 폐지될 수 있다”는 주의 문구를 보고 걱정이 되어 레딧에 오틀리의 상장 폐지 가능성을 물어보았다. 사람들이 단순한 기준 하나로 상장폐지가 결정되지는 않으며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알려주었다.
UFO의 비행원리
‘UFO’는 허구적인 개념으로 여겨질 수 있으므로, 이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논리적인 흐름에 더욱 신경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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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윤팔
출판: 하움출판사
발매: 2023.08.04
“지엽적인 티끌은 있을지라도 큰 줄기의 흐름은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현상을 분석하고, 과학 원리를 인용하여 귀납적, 연역적으로 20여 가지를 통해 증명합니다. ··· 이 원리로 에너지 문제와 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으므로 특정한 국가나 개인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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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냉 양자에 자기장을 걸면 폭발처럼 보이는 보스노바(bosenova)를 해석하고, 수많은 물리학자가 이룬 여러 과학 원리를 융합한 것에 불과합니다.”[9]
대학교 글쓰기 시간에 ‘UFO의 비행 원리’를 주제로 삼았으나, 교수님께서 유사과학적인 내용은 적합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누군가 수십 년의 세월을 바쳐 연구한 결과가 이렇게 쉽게 일단락되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현재 기술로는 구현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하므로, 이를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을 응원하는 나로서는 언젠가 돌파구를 찾아 비행 기술을 개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무능함과 방대한 내용 때문에 책을 읽었어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런 내용이 있다는 사실을 기록하는 것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씩 설명하듯이 실타래를 풀어가면, 내용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자연스럽게 스스로 공부가 되지 않을까? 아래 내용은 핵심적인 부분들을 요약한 것이다.
원리: 질량 에너지 등가의 식 $E = mc^2$ 은 질량을 에너지로 변환해 방출하는 원리다. 반대로 우주공간에 고르게 분포된 공간 에너지-양자를 흡수엔진으로 질량 속에 감아 넣을 수 있다고 가정하면 에너지가 질량으로 변환되는 $E / c^2 = m$의 원리를 이용할 수 있다. 여기서 에너지를 질량으로 변환할 때 어떻게 비행 원리로 활용한다는 것인가?
냉각된 원자가 공간 양자(에너지)를 포획-합성할 때 인력의 작용 반작용을 이용한다. 글루온이 실린더 밖으로 터널링함으로써 핵력이 공간 양자를 흡수-합성할 때 인력의 힘이 실린더 안으로 돌출되며 작용 반작용이 발생해 비행한다.
고등학교
고등학생 시절, 하루의 많은 시간을 책상에 앉아 있어야 했다. 학교 공부에 흥미가 없을 때 책을 읽었다. 그때 기록했던 내용을 정리해보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은 없지만 이러한 일련의 행동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다가올 날들에 대한 방향을 결정짓는 데 밑바탕이 되지 않을까? 들어가기에 앞서, 학창 시절의 기록이 현재의 생각이나 신념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꿈 엔터테인먼트
매트 헤이그씨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라는 책에서 영감을 받았다. 꿈 엔터테인먼트는 꿈을 제작하고 그것들을 경험함으로써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문화 활동을 일컫는다. 꿈 제작자를 ‘꿈 장인’이라 칭하며, 그들의 솜씨와 섬세한 감각에 따라 꿈의 풍미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사람들은 인터넷이나 가게를 통해 원하는 꿈을 구매할 수 있는데, 마치 서점에서 인기도서를 찾듯, 꿈의 세계에도 인기상품이 존재한다.
꿈을 통한 영감 트랜드를 따르는 대중적인 취향과 특정 장르에 정착한 마니아층이 있다. 이들은 새로운 경험을 꿈을 통해 얻고, 그 과정에서 인생에서 겪은 다양한 감정들을 풀어낼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기존의 1인칭 시점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얻기 힘든 새로운 시각이나 영감을 얻음으로써 삶이 더욱 다채로워질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과격하거나 선동적이거나 중독을 초래할 수 있는 작품들은 행복하고 윤택한 사회 공동체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꿈 심의위원회’라는 기관에서 콘텐츠들을 평가하고, 적절히 걸러내야 한다.
잠의 중요성 순식간에 지나가는 인생 속에서, 잠은 우리 삶의 1/3을 차지한다. 언젠가 생명공학 기술로 잠을 줄이면서도 피로에서 회복할 수 있게 되더라도, 잠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소중한 잠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바로 이 질문에서 꿈 엔터테인먼트를 기획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잠을 자고 꿈을 꾸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기대되는 순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꿈의 잠재력과 현실과의 구분 아직 이것이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지만, 꿈을 꾸는 일은 타인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으며, 적절히 활용하면 인생에 창조적인 영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꿈에 중독되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거나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위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사람들이 꿈을 꾸고 있을 때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도록 ‘인증마크’ 같은 표시를 강제적으로 넣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꿈꾸는 중’이라는 문구를 사용자 인터페이스처럼 꿈속에 표시하는 방식이다.
조세정책
세법(세금의 부과 및 징수에 관한 법)은 일반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람에게 세금 혜택을 제공한다. 정부로서는 일하는 노동자가 많아질수록 세금을 더 많이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장려하는 측면이 있다. 또한, 세법은 거주지를 제공하는 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더 많은 거주지를 제공할수록 제공자는 혜택을 받고, 세금은 상대적으로 적게 낼 수 있다. 이와 같은 정책은 일자리 창출과 주택 공급을 촉진하기 위한 정부의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근로자의 세율 (출처: 국세청)
법인사업자의 세율(출처: 한화투자증권)
그렇다면, 정부가 세법을 통해 일자리 창출과 주택 제공을 유도하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부의 목표는 국가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며, 일자리를 구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과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람 중 누구에게 더 많은 세율을 부과하는 것이 타당할지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 있다.
세법은 사업가와 자본가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제공하는 일자리, 주택, 그리고 사회에 필요한 상품들은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자 증세’에 대한 논의에서는 부유한 계층이 사회에 더 많이 환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는 경제적 평등과 공정성을 강조하는 견해에서 제기되는 주제다. 정부는 다양한 관점을 반영해 세금 정책을 조정하며, 각 계층의 기여와 세 부담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독서
자유의지에 관해서
“자유를 관 속에 넣고 못을 박은 것은 진화론이다. 진화는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면, 자연선택이 어떻게 인간의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었겠는가?
최신 생명과학 연구는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오래된 믿음에 의문을 던지곤 한다. 한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을 거대한 뇌 스캐너에 넣고, 양손에 스위치를 하나씩 쥐게 한 뒤 원하는 때에 하나를 누르도록 했다. 그런데 참가자가 행동을 실행하기도 전에, 심지어 자신의 의도를 자각하기도 전에 과학자들은 뇌 신경 활성 패턴을 통해 그들이 어떤 스위치를 누를지 예측할 수 있었다.”[10]
또 다른 실험이 하나 있다. “평범한 쥐의 뇌에서 감각 영역과 보상 영역을 찾아 그곳에 전극을 이식했다. 그렇게 하여 과학자들은 리모컨으로 쥐를 조종할 수 있었다. 쥐가 왼쪽, 오른쪽으로 틀고, 사다리를 오르고, 쓰레기 더미 주위를 돌게 하고, 심지어 매우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게 하는 등의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몇몇 동물복지 운동가들은 이에 대해 쥐에게 고통을 준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답했다. 전극이 뇌의 보상중추를 자극하면 쥐는 고통을 느끼지 않을뿐더러 ‘쾌락’을 느끼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라고”[11]
호모 사피엔스를 대상으로 벌인 실험들은 인간 역시 쥐처럼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뉴 사이언티스트) 기자 샐리 애디는 저격병 훈련시설을 방문했다. 그녀에게 전쟁 시뮬레이터에 들어가게 했는데, 두려움과 공포에 압도되어, 버벅대면서 총을 제대로 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다음번에는 경구개 헬멧을 착용하게 했다(경두개자기자극술은 전자기 코일에서 발생한 자기장을 두개골을 통과시켜 두뇌의 특정 부위의 신경 세포를 활성 또는 억제하는 뇌 자극술이다).
갑자기 그녀는 침착하게 총을 준비하고 적군들을 하나하나씩 정확하게 처리해 나갔다. 그녀는 그 시뮬레이터가 끝난 후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그녀의 인터뷰 중 발췌해온 말을 써보겠다. “난생처음 머릿속이 조용해진 그 순간, 내가 알던 세상이 더는 존재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너무 무서워 시도조차 못 하도록 해서 만든 마음속의 악동 같은 괴물들을 떼어낸 나는 누구였지? 그리고 그 목소리들은 어디서 온 거지?”[12]
호모 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설명한다. “지난 세기 과학자들은 사피엔스의 블랙박스를 열어 그 안에 영혼, 자유의지, ‘자아’ 같은 것은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안에 있는 것은 다른 모든 실재와 똑같은 물리적, 화학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 유전자, 호르몬, 뉴런뿐이었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
할머니와 엘사의 미친 듯한 창의력이 마음에 든다.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듯하다. 이들은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허물며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만의 뼈대 있는 판타지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부럽게 느껴졌다. 그 세계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맥락이 있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할머니와 엘사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같은 세계를 공유하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 공감, 친밀감이 쌓인다.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재미를 더해주고, 삶의 원동력이 되는 듯한 느낌이다. 비록 할머니는 나중에 세상을 떠나지만, 어떻게 보면 할머니와 엘사는 언제나 함께 있다. 할머니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공유한 세계를 통해 둘의 영혼은 이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할머니가 엘사에게 거짓말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과정에서도 이들의 세계관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야기는 이를 풀어나가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은 가족과 이웃 간의 사랑, 그리고 소소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판타지 세계가 조화를 이루는 따뜻한 이야기다.
넷플릭스
회사는 프리미어 리그 클럽처럼 운영되어야 한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탁월한 인재가 필수적이며, 평범한 성과에 머무르는 구성원은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회사의 성장을 가속하려면 솔직한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구성원들이 서로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시킬 수 있도록 정중하게 피드백하는 문화는 매우 가치 있다. 비록 즉시 기분이 상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러한 피드백이 큰 도움이 되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특히 직원이 상사에게 피드백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지위가 올라갈수록 솔직한 의견을 듣기 어려워지지만, 상사의 실수가 회사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진다. 따라서 상사는 부하 직원들이 자유롭게 피드백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CEO가 회사에 자유를 허용했다면, 상사들이 그 자유를 적극 활용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윗선에서 이를 실천하지 않으면, 직원들은 눈치를 보며 자유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것이다.
인재 밀도가 높은 조직에서 구성원들이 양심과 책임 의식을 갖추고, 여기에 솔직한 피드백 문화와 자율성이 더해진다면, 회사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조직으로 성장할 것이다. 불필요한 규정이 많으면, 뛰어난 인재들의 창의성과 상황 판단 능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가슴에 우주를 품은 조선의 선비, 홍대용
사회 수행평가 시간에 공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을 읽으며,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공학이 모두 기초학문을 토대로 발전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기초학문에 관한 관심이 생겼고, 기초학문이야말로 우리 삶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고 성찰할 수 있는 중요한 분야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후 학교에서 한국사 독후감 과제를 받게 되었고, 조선의 기초학문 학자들을 조사하던 중 홍대용이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다. 홍대용은 조선의 천문학자로, 어릴 적부터 우주에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그의 삶과 업적을 더 알고 싶어 가슴에 우주를 품은 조선의 선비, 홍대용 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홍대용은 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측정하는 천문 관측기 혼천의를 제작했으며, 사상과 철학에 관한 다양한 저서를 남겼다. 특히 본받을 점은, 그는 부와 명예보다는 연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평생을 천문학에 헌신했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탐구한 지식을 바탕으로 가난한 백성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썼다.
그가 위대한 천문학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남다른 사고방식 덕분이었다. 그는 어떤 말이든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 먼저 의심하고, 자기 생각과 신념조차도 끊임없이 검토했다. 홍대용은 “큰 의심 없이는 큰 깨달음도 없다”라고 믿었으며, 이는 역사 속 위대한 과학자들과 존경받는 인물들이 공통으로 가진 태도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나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피엔스
현대에서 우리가 직면한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린다고 해서 인간이 반드시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자유의 정도보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이다. 방황 속에 머문다면, 아무리 자유로워도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열심히 산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행복에 대한 질문
입시를 준비하는 것은 지금 당장 힘들지만, 미래의 행복을 위한 선택일 수 있다. 혹은, 입시 과정 자체에서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불행하게 사는 것은 왜 받아들일 수 없는가? 단순히 불행이 삶을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럽기 때문인가?
하지만 고통스럽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고통 자체일까? 감정이 곧 자기 자신을 대변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감정이란 무엇이며, 감정을 따르는 것이 곧 행복한 삶일까? 우리는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 끝은 어디인가?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왜 끝이 없는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는가? 의미란 무엇인가?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삶에는 본질적인 의미가 없다. 우리가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은 단지 우리의 사고 속에서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우리의 사고방식이 곧 우리가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추구하는 행복을 결정한다. 이러한 질문들은 현대 사회에서 더욱 복잡해진 것일까? 더 많은 자유를 누림과 동시에 생기는 불안의 산물일까?
죽음과 존재에 대한 질문
죽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죽을 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나는 우주를 구성하는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나와 우주에 떠도는 원자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생물과 무생물의 본질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왜 이 광활한 우주에서 생명은 마치 먼지보다 작은, 숨이 막힐 듯 좁은 공간에만 존재할까? 생명의 탄생은 우주의 형성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가 아닐까? 마치 사람이 코딩할 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처럼, 우주의 원자들이 잘못 얽히면서 생명이라는 현상이 우연히 발생한 것은 아닐까?
혹시 우리 우주보다 더 정교하게 설계된 우주에서는 생명이라는 오류가 거의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우주에서는 생명이 극히 드물게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진화적 ‘성공’과 인간의 삶
진화적 성공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흔히 성공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실제로 개개인의 삶에 진정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좁은 공간에서 살이 찌는 송아지가 결국 소비되는 것과 비교할 때,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코뿔소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을까? 송아지가 수적으로 번성했다고 해서, 그 개체가 겪는 고통이나 어려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류는 역사적으로 수적인 성장을 이어왔지만, 그 과정에서 개개인의 삶의 질이 얼마나 함께 향상되었는지는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외적인 발전만으로는 인간의 행복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외적 성과와 내적 성장을 균형 있게 이루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다. 어쩌면 이런 자기 성찰의 태도가 근현대 유럽이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인도, 중국, 페르시아 같은 과거의 강대국들 또한 각자의 사상과 문화를 깊이 발전시켰다. “아직 우리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탐구하려는 태도가 발전을 이끌어낸 요인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가족 공동체의 약화
가족 공동체의 약화는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에서 비롯되었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교육, 의료, 치안, 직업 등 가족이 담당하던 역할이 많았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이 기능들을 국가가 대신하게 되면서 가족의 역할은 줄어들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아플 때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경찰이 치안을 유지한다.
시민혁명 또한 가족 공동체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모든 인간이 존엄하고 평등하며 자유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의식이 확산하면서, 전통적인 가족 관습이 약화하였다. 과거에는 부모가 자녀를 체벌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국가가 이를 제재한다.
행복을 꿈꾸는 수도원
“우리는 예수께서 행하신 아가페적 사랑, 즉 감정에 방해받지 않고, 소유에 대한 집착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랑의 지혜를 배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을 비우는 만큼 채워주시고,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만큼 우리를 차지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속담에도 있듯이, 이미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찬 사람을 하느님께서는 채우실 수 없다.”[13]
이는 불교의 가르침과도 유사한 점이 많다. 불교에서는 무소유를 강조하며, 감정의 요동이 결국 무상(無常)하다는 깨달음을 중시한다. 또한,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르는 길을 추구하는데, 이는 인간의 고통을 넘어서려는 깊은 사유와 실천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스도교 역시 자기 비움을 통해 신과 하나 되는 길을 제시하지만, 그 과정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하느님의 존재이다. 두 종교 모두 인간의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온한 상태를 이상적인 경지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그러나 그 접근법과 구체적인 표현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불교는 인간 내면의 깨달음을 통해 해탈에 이르는 길을 추구하는 반면, 그리스도교는 신의 뜻과 은총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길을 강조한다. 결국, 이 두 종교는 각기 다른 문화적, 신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인간의 고통과 집착에서 벗어나려는 공통된 뜻이 있지만, 그 과정과 방법론에서 다른 길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베단따의 힘
이성은 비교와 차이를 통해 작동하지만, 실재는 그런 구분을 초월해 있다. 감각을 통해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사실 불확실하며, 오히려 가장 불확실하다고 간주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하다. 우리가 지각하는 것은 비존재이고, 지각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 진정한 실재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주어진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마치 양 떼 속에서 자란 사자가 자신을 양이라고 여기며 착각 속에 머물 듯이 말이다. 그러나 사자가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서야 본래의 모습을 깨닫듯, 인간도 오랜 탐구와 성찰을 통해서만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다. 그 길고도 긴 여정을 거친 끝에, 언젠가는 자신의 본모습을 발견하게 되리라 믿는다.
삶은 각자의 욕망에 따라 채색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욕망하는 방식대로 삶을 물들여 간다. 그러나 베단따는 무채색에 도달하는 방식으로 삶을 채색한다. 모든 욕망이 무상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다. 욕망을 넘어서려는 욕망을 선택하는 것. 이는 자아를 백지화하는 여정이며, 자기 자신을 덜어내는 과정이다. 탐욕과 집착으로 채색된 자아들을 하나씩 벗겨 내고, 무채색에 가까워질수록 역설적으로 더 깊은 평온과 환희를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곧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반도체 넥스트 시나리오
무엇보다 중국의 연구 성과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네이처 Nature》가 우수한 연구 성과를 기록, 정리해 발표하는 〈네이처 인덱스 Nature Index〉를 살펴보면, 2020년 기준 논문 수 세계 1위는 미국, 2위는 중국이다.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약 일곱 배나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물론 인구가 많으니 당연히 논문 수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인구도 결국 국력이다. 심지어 중국 논문의 수준은 매우 높다. 보통 학술지에 논문을 제출하면 여러 명의 검토자가 그 타당성과 독창성, 가치를 평가해 수록을 결정한다. 당연히 높은 권위를 자랑하는 학술지일수록 검토 과정이 깐깐하다.
특히 이공계 연구자에게 《네이처》, 《사이언스 Science》, 《셀 Cell》, 일명 NSC라고 불리는 세 학술지는 꿈의 무대다. 교수, 대기업이나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원조차 NSC의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2020년 한 해 동안 《네이처》에 중국은 190편을 올렸고, 우리나라는 마흔세 편을 올렸다. 《사이언스》에 중국은 134편을 올렸고, 우리나라는 열아홉 편을 올렸다. 《셀》에 중국은 예순일곱 편을 올렸고, 한국은 여덟 편을 올렸다. 특히 논문의 피인용 횟수는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무려 열한 배나 높았다. 이래도 중국을 무시할 수 있을까. 나는 중국의 과학기술 수준을 무작정 높이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현실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1]: 유네스코한국위원회
[2]: Enoch, Tan. Matrix of Mind Reality. Fortuna, 2018.
[3]: A. H. Almaas. The Unfolding Now. 박인수 역, 김영사, 2015.
[4]: 미치오 카쿠. 양자컴퓨터의 미래. 박병철 역, 김영사, 2023.
[5]: Walter Isaacson.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 까치, 2007.
[6]: 토스뱅크
[7]: Ray Dalio. The Changing World Order. 한빛비즈, 2022, p. 581, 583.
[8]: OATLY
[9]: 강윤팔. UFO의 비행원리. 하움출판사, 2023, p. 6, 7.
[10]: Chun Siong Soon et al., ‘Unconscious Determinants of Free Decisions in the Human Brain’, Nature Neuroscience 11:5(2008), 543~545.
[11]: Sanjiv K. Talwar et al., ‘Rat Navigation Guided by Remote control’, Nature 417:6884(2002).
[12]: Sally Adee, “Zap Your Brain into the Zone: Fast Track to Pure Focus’, New scientist, 6 February 2012.
[13]: 뉴스케테 수도승들 공저. 행복을 꿈꾸는 수도원. 박효섭 역, 푸른숲, 2023.
1: 회사 면접
수원에서 과천까지 갈 때 1시간 넘게 걸렸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결국, 건물 안에 들어갔는데 어디서 기다려야 할지 몰라 계단에서 세액 공제 방법과 관련된 글을 읽고 있었다. 연말정산 관련 일이었기 때문에 세금 납부와 관련해서 질문한다는 블로그 게시물을 읽고 공부하고 있었다. 혼자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라 떨리고 긴장되었지만, 마침내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과는 다르게, 회사 내부는 정말 깔끔하고 층고가 높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바닥은 카펫 느낌의 재질이라 마치 미국 테크 기업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런데 대기실에 들어가니 모두 양복 차림에 나이는 26~33살처럼 보였다. 내가 여기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만 대학생인 것 같아서 굉장히 어색했다. 모두 비즈니스 캐주얼에 구두를 신은 모습과 비교했을 때 내 복장은 잠깐 커피 마시러 나온 아저씨 같았다. 면접장에는 나를 포함해 6명이 들어갔고, 옆에 앉은 사람들은 ‘인사팀’, ‘팀장님’ 등의 직책을 언급하며 면접 질문에 대답하고 있었다. 면접 도중에 문 열고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2: 양자도약의 연속성
- 힐베르트 공간의 연속성: 양자 상태는 힐베르트 공간에서 벡터로 표현되는데, 이 공간에서의 상태 변화는 연속적인 유니터리 변환(어떤 변환이 있을 때, 시스템의 총 에너지를 보존하는 성질을 갖는 변환)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 즉, 우리가 실수 공간에서 "도약"처럼 보이는 현상도 사실 힐베르트 공간에서는 연속적인 변환일 수도 있다.
- 위상학적 연결 가능성: 허수 차원이 포함된 위상학적 구조를 고려하면, 전자 상태의 이동이 불연속적으로 보일지라도 사실 특정한 경로를 따라 변화하는 연속적인 과정일 가능성이 있다.
- 양자 점프의 연속적 모델: 최근 연구에서는 양자도약이 완전히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간 규모에서 점진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2019년 예일대 연구에서 큐비트를 이용한 실험에서는, 특정 조건에서 양자도약이 일어나는 과정을 예측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는 우리가 양자도약이 비가역적이고 순간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더 미세한 수준에서는 연속적인 과정일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3: By Lalala666 at English Wikipedia - Transferred from en.wikipedia to Commons. Transfer was stated to be made by Ddxc.,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189816
4: Charles Mackay. 대중의 미망과 광기. 이윤섭 역, 필맥, 2018.
책 출처
프레드릭 배크만.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이은선 역, 다산책방, 2016.
리드 헤이스팅스, 에린 마이어. 규칙 없음. 이경남 역, RHK, 2020.
강이경. 가슴에 우주를 품은 조선의 선비 홍대용. 도토리숲, 2019.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조현욱 역, 김영사, 2015.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김명주 역, 김영사, 2017.
박효엽. 베단따의 힘. CIR, 2019.
권순용. 반도체, 넥스트 시나리오. 위즈덤하우스, 2021.
에필로그
P.S. 생각해봤는데 미술 동아리에 들어갔어.